- STORY
- 01스토리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어려서 너무나 귀여웠을 때 부르던 이름과 고등학생이 되어서 매일 매일 공부 열심히 하라며 나무랄 때 부르던 이름을 비교하며 떠올려 봅니다. 같은 이름이지만 부르던 그 목소리에는 분명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 3 초기까지는 아이가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크지 않고 아직 어린 모습으로 이대로 멈추어 있었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 아이가 어느 덧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인지라 저도 마음이 바뀌어 아이에게 대학과 학과와 미래 직업에 대해 조언(잔소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 방법에 대하여,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제 식대로 키우고, 둘째 아이는 엄마식대로 키워보기로 합의하였기에 가급적 아이 공부에 대하여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기본적인 입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목표가 없었던 아이에게 학과에 관련된 책도 사다주었습니다. 빨리 다 읽고 저와 대화하기를 바랐지만 제가 사다 준 책은 한동안 아이 책상에 사다 놓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참다 참다 못하여 마침내 다 읽었는지를 아이에게 채근(採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다 주었던 책을 다 읽고 나서 정한 아이의 목표 학과는 그동안 제 엄마가 들려주었던 직업과 꼭 맞는 학과(?)라고 해서 다행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의 목표 학과가 정해졌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학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 목표가 바뀌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학기 초라서 아직 자신의 성적도 정확히 알 수 없었으며, 막연히 부모가 어릴 때부터 이야기했던 학과를 생각하여 목표를 정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직업이나 인기학과라는 것이 상당 부분 성적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 학과가 성적과 동떨어지면 목표 학과를 변경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의 직업이나 꿈에 대하여 자녀들이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은 경우에는 주변의 사소한 영향으로도 쉽게 목표를 바꾸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알게 된 아이의 내신과 수능 등급은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웠지만 앞으로 노력하면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에 맞춰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고 모의고사도 치르면서 학년이 높아져 갔습니다. 때로는 등급 향상으로 기대가 커지며 더 높은 목표를 갖게 되었고, 또 어떤 때는 등급 하락으로 실망하면서 애써 아이가 실수한 것이라는 변명도 들으며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아이 엄마는 엄마대로 최선을 다하여 아이를 돌보며, 혼내며, 격려하였고, 다른 부모님들처럼 수험생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의 모든 날들은 시험 준비 그리고 성적과 등급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 당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냥 일상적인 부름이었거나 아니면 잔소리하거나 혼내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질책이나 야단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바뀌지 않는 것은 부모의 잔소리나 훈계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으로 수긍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마지못해 약속하지만 돌아서면 예전처럼 생활하기가 쉽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이와 함께 둘이서 오랜 시간을 함께 산책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습니다. 아이 말에 집중하여 귀담아 들으니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제 마음으로 온전히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고민과 두려움에 대해 아이가 속마음을 드러내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대학에 관하여, 학과에 관하여, 내신 성적에 관하여, 모의고사 성적에 관하여, 계열 선택에 관하여,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에 관하여, 학원에 관하여, 선생님에 관하여, 게임에 관하여, 학교생활에 관하여, 부모의 오해에 대한 반항에 관하여 등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그 때 제가 아이에게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너를 등급으로만 보아서 미안하구나. 사랑하는 너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성적으로만 평가하여 바라본 것이 미안하구나. 너의 아픔을 귀담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오해하여 야단쳐서 미안하구나.”
우리 학생들이 모두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이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각자 타고난 재능과 그동안 쌓아온 노력에 합당한 대학, 학과로 진학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희망찬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경구 중에 ‘日日新又日新(일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오늘 서있는 이 자리를 먼저 확인한 후 무엇이 부족한 지를 찾아서 쉬지 않고 개선해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노력해가는 자세를 갖추어주기 위해서라도 점수가 아닌 사랑과 이해와 고마움을 담아 아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야단치고 화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등급이 아닌 소중한 이름으로 아이들을 불러보시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부터 조금씩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