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신현지 기자]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된 첫 해, 우려했던 고교과정과 대입체제가 따로 노는 ‘본말전도’가 현실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진로/적성에 맞는 과목 이수’였지만, 학교는 여전히 정시확대 체제 아래 수능에 종속돼 있었고, 입시 과목이 우선됐다. 특히 지역과 학교 규모에 따른 과목 선택권 격차도 커지면서 학교별 불평등까지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최근 발간한 ‘2025 이슈페이퍼: 고교학점제 본격 적용 첫 해 학교 교육과정 편제 경향’에 따르면, 고교는 수능 출제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었다. 국어/수학/영어 등 수능 주요 교과의 선택과목 중 최대 80%가 학교 지정 과목으로 운영됐다. 반면 수능 미출제 과목의 편성은 44.11%에 불과했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한다는 고교학점제 본래의 취지는 희미해지고, 학교는 수능 출제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며 입시 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실상 학교 입장에서도 수능 중심 교육체제는 불가피하다. 서울 주요 대학 16개교에 강제된 정시 40%의 경우 수시이월까지 포함하면 정시 비중이 50%에 달할 만큼 수능 중심 대입 문호가 넓어져 있기 때문. 게다가 사회적으로 대입이 학생들의 최고 목표가 된 가운데 고교 역시 대입에 유리한 과목 설계를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문제는 지역별 격차도 뚜렷하다는 것이다. 교/강사 수급 등 인프라가 확보된 대도시와 그렇지 않은 농어촌의 과목 선택권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선택과목 학점 비율은 대도시와 중소도시가 6.6%p 격차를 보였으며, 선택과목 수는 중복 편성 과목을 제외하면 평균 10개 정도 차이가 났다. 지역과 학교 규모에 따라 과목 선택권 격차도 커지면서, 사실상 대도시와 대규모 학교만이 학점제의 실질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말전도’ 대입과 따로 노는 교육과정, 수능 선택과목 편중>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된 첫 해, 제도 취지와 달리 여전히 ‘수능 중심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평가원 연구진이 17개 시도 68개 일반고의 3개년 교육과정 편재표를 분석한 결과, 학교 현장은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보다는 수능 출제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학교 역시 수능 중심 과목 운영이 불가피하다. 서울 주요 대학 16개 대학에 강제된 정시 40%가 유지된 가운데 수시 이월 인원까지 포함하면 정시 비율은 50%에 달하기 때문. 정시 비중이 높은 가운데 학생의 대입을 위해선 고교 역시 수능 과목을 위주로 과목을 편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로 고교의 지정 과목 편성 현황을 살펴보면, 국어/수학/영어 등 수능 주요 교과의 선택 과목 중 약 60~80%가 학교 지정 과목으로 운영됐다. 편성 비율이 높은 순으로 살펴보면, 국어는 문학(79.41%), 수학은 대수(80.88%), 영어는 영어Ⅰ(79.41%)이 가장 많은 학교에서 지정/운영되고 있었다. 수능 미출제 과목인 영어 독해와 작문(44.11%)과 비교하면 지정 비율에서 큰 차이가 있다. 연구진은 “수능 출제 과목은 학교 지정 과목으로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학생 중심, 진로 기반’이라는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가 입시 체제에 종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수능 중심 과목 운영은 교육계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고교 수업을 바탕으로 대입이 운영되는 것이 아닌, 대입을 위해 고교 현장이 바뀌는 ‘본말전도’가 벌어진 것이다. 연구진 역시 “수능 출제 과목의 학교 지정 과목 고정 경향은 수능과 무관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역/학교 규모 따라 ‘불평등 심화'.. 선택과목 학점 비율, 과목 수 ‘격차 뚜렷’>
또 다른 문제는 지역과 학교 규모에 따른 학점제 운영 격차다. 대도시나 큰 학교가, 중소도시나 읍면지역의 작은 학교보다 높은 과목 선택권을 보였기 때문. 연구진 역시 “대도시나 큰 학교의 인프라나 교/강사 수급이 더 원활한 측면이 있어 고교학점제 초창기부터 농어촌 지역이나 작은 학교의 격차 해소에 정책적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통합학교 운영, 교육청 소속 순회교사 정책 등이 실효성 있게 지속적인 정책 방안으로 구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사에서도 대도시 학교의 학생 선택 과목 비율은 중소도시/읍면지역보다 평균 6%p가량 높았다. 대도시의 선택 과목 학점 비율은 47.6%로 가장 높았으며, 중소도시는 41%로 가장 낮았고, 읍면지역도 41.1%로 비슷했다. 고교 규모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20학급 이상은 44.2%로 20학급 미만의 41.9%에 비해 높았다. 학교 평균 제공 과목 수로 살펴봐도 대도시는 평균 86.08개, 중소도시는 77.64개, 읍면지역은 81.65개였다. 하지만 중복 과목 수를 제외하면 대도시는 70.23개, 중소도시는 67.19개, 읍면지역은 60.25개로, 대도시와 읍면지역 간 과목 수가 평균 10개 정도 차이가 났다.
고교학점제의 과목선택권은 교/강사 수급 여건과 환경이 대도시 학교와 20학급 이상의 큰 학교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교가 큰 만큼, 교원 정원도 많을 확률이 크기 때문. 소규모 학교는 개설 가능한 과목 수가 한정되어 있어 학생의 진로에 맞는 선택이 사실상 어렵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실을 “지역 규모와 학급 규모에 있어 다소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남”이라고 명시하며, 교육 불평등 심화를 경고했다.
물론 학교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고 보통 교과 외에도 다양한 수준과 범위의 과목을 편성하는 식이다. 조사 대상 학교 중 반 이상이 특목고 과목을 편성하고 있었고, 전문 교과와 고시 외 과목을 편성하는 학교도 각각 1/4가량을 차지했다. 단, 연구진은 “특목고/전문 교과 편성 과목 가운데는 정보통신과 관련된 과목이 많았다”며 “이러한 현상이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인지, 또는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관심 과목을 편성한 결과인지에 대해 추후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사회, 과학 교과의 편성 경향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회/과학의 선택 과목이 거의 전무하고, 융합 선택 과목은 대부분 3학년 2학기에 편성하고 있어 실질적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모니터링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사탐런’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융합 선택 과목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과학 분야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조차 수능에서 과학을 기피하는 상황에서는 과학 융합 선택 과목에 대한 실질적 선택이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고교학점제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수능-교육과정 연계성 재검토’ ‘지역별 격차 해소’ ‘다양한 학습자 요구 반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즉, 고교학점제가 입시 준비의 또 다른 형태로 굳어지지 않으려면, 대입 제도와의 구조적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